현대 교회는 회개에 대한 설교를 꺼려한다. 가뜩이나 살기 힘든데 교회에 와서까지 힘들고 싶지 않다는 신자들 때문이다. 회개의 메세지는 신자들에게 도전과 부담을 준다. 회개하고 죄로부터 돌아설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을 것인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롬2:4)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10)

죄를 이길 힘도, 그렇다고 회개할 생각도 없는 신자들에게 이런 말씀은 마냥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신자들은 축복과 사랑의 설교로 자신들을 편하게 해주는 교회를 찾아 떠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교회들은 회개에 대한 설교를 피하게 된 것이다.

교회가 신자의 죄에 대하여 침묵하는 쪽을 택할때 양떼들이 받는 피해는 심각하다. 회개하지 않은 죄들로 인해 심령은 더욱 무디어지고 주님과의 교통이 방해를 받고 마침내 주님과의 관계가 불화해진다.

죄를 간과하고 덮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반대로 자신의 힘으로 죄를 이겨보려고 애쓰는 것도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회개는 아니다. 이런 종교적인 노력은 우리를 더 깊히 율법과 죄의식이라는 굴레에 가두어 버린다.

성령이 주시는 근심은 우리를 올바른 회개로 이끈다. 주님과 우리의 불화한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주고, 율법과 죄의식의 굴레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길은 오직 회개뿐이다.

본문이 말하는대로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겠다. 회개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회개를 두려움과 의무감으로 하거나, 또는 마귀가 가져다주는 과도한 죄의식이나 정죄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의 제물이 되셨다.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고 회개할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며 죄를 이길수 있는 은혜와 성령의 권능을 부어 주신다.

죄인된 인간은 본능적으로 회개를 싫어한다. 우리는 막연히 회개를 율법적이라고 생각하며, 회개는 신약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상반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복음과 요한 계시록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회개에 대해서 강조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회개를 모르는 현대교회를 생각할때 마음이 무거워진다. 회개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회개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져야겠다. 교회안에 누룩처럼 퍼져있는 회개에 대한 잘못된 시각들을 향해 나도 세례요한처럼 회개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되고 싶다.

글쓴이: 송명선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