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미국에 ‘제프리 다머’라는 연쇄살인범이 있었다. 한번 우연히 제프리 다머의 부모가 인터뷰한 내용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무심히 흘려들었을지 몰라도 치유사역을 하는 나는 그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내용이었다.

제프리가 왜 연쇄살인을 저질러야만 했는지 앵커가 물어보았을때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프리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개구리같은 생물을 해부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 대해서 말하길, 자기는 아주 내성적인 소년이었고 친구들에게 많은 왕따를 당했지만 보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꿈속에서 자신을 힘들게 했던 친구들을 죽이는 꿈을 자주 꾸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제프리의 아버지는 마음속으로만 살인의 죄를 지었지만, 그 아들은 아버지의 죄성을 물려받아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면의 충동에 이끌려 엽기적인 범행을 계속 저지르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그러나 물론 꼭 그렇다고 증명할 방법은 없다.

성숙한 신자를 괴롭히는 것은 행동으로 범하는 죄의 차원이 아니라, 이미 우리속에 인격의 한부분으로 자리잡은 죄성이다. 죄된 행위는 비교적 쉽게 고칠수 있지만 내면의 죄성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성향은 단시일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영적, 육적인 유전으로 인해 어떤 특정한 죄를 삶속에서 반복함으로써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보시는 죄에는 세종류의 차원이 있다. 출 34:7절을 보면 죄를 세가지의 다른 뜻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Keeping mercy for thousands, forgiving iniquity and transgression and sin, and that will by no means clear the guilty; visiting the iniquity of the fathers upon the children, and upon the children’s children, unto the third and to the fourth generation. – 출 34:7

sin–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모든 것
Transgression– 반항과 불순종으로 인한 죄악된 행위
Iniquity– 죄성, 내적으로 타락하고 왜곡된 성향

이 귀절은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의 죄악된 행위자체가 아니라 부모의 죄성인 것을 말해준다. 어떤 특정한 죄가 세대를 거쳐서 반복될 때, 그 죄는 사람의 성품을 왜곡시키어 인격의 한 부분이 되게 한다. 즉 ‘죄’ 에서 ‘죄성’으로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이미 인격화된 어떤 죄성을 물려받으면, 그 자녀는 이런 성향을 물려받지 않은 다른 사람보다, 같은 죄를 지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이런 경우에 자신의 죄된 행위만을 고치려고 애쓰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 보다 근원적인 치유를 위해, 자신의 성품이 되어버린 죄성을 깊히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제프리 다머와 같은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부모의 성품을 자녀가 닮는 예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자녀가 미운 짓하는 것을 볼때 흔히 “아빠 닮아서 저래, 혹은 엄마 닮아서 저래” 라고 말하지 않는가?

부모들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더이상 어떤 죄성도 우리 자녀들에게 내려가지 않도록 해야할 책임이 있다. 자신의 가계를 통해 내려온 어떤 특정한 죄성들이 있는지 자신의 삶을 살펴보고 깊히 회개함으로써 더 이상 자녀들이 같은 죄의 영향력아래서 고통당하지 않도록 반드시 그 죄성들을 처리해야겠다.

이런 죄된 성향을 회개하지 않을때 영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죄성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주님과의 더 깊은 임재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며, 신자의 영적 성숙과 성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글쓴이: 송명선 전도사